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1차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약속이행 때문에 생겼다. 1차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은 독일의 편에 서게 되고, 영국은 군사적 목적으로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지역에서의 독립을 약속한다. 문제가 된 것은, 1915년 맥마흔-후세인 각서를 통해 중동지역을 아랍인들에게 주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중 계약을 한 셈이다.
전쟁이 끝나자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고 독일의 정복전쟁은 이를 부추겼다. 결국 유대인들의 입지가 강해진 상태에서 UN은 1948년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의 구역을 나누자고 제안했다. 유대인들은 받아들였지만, 팔레스타인지역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제안이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1948년 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흥미로운점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던 아랍국가들의 공격에도 이스라엘은 대승을 거두게 된다. 아랍연합은 자금사정이 좋았지만, 지휘체계가 통일되지 않았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는다. 반면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를 극복하고 민족의식으로 똘똘 뭉친 상태였다.
2차 중동전쟁이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 연합군의 선공으로 1957년 진행된다. 이스라엘의 강한 공군을 바탕으로 최강이였던 이집트의 공군을 산산조각내고, 시나이반도와 북쪽 유역을 획득한다. 하지만 미,소 압박에 의해 반납한다. 미국이 더 이상 핵으로 자신들의 나라를 지켜줄 수 없음을 깨닫게 된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함께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는 시점이다.
3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6일전쟁이라고도 불리는데,이집트의 주도하에 아랍국가들이 전쟁을 시작햇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또 승리하여, 영토를 늘린다. 이후 4차 중동전쟁 1973년 발발하여 이스라엘은 궁지에 몰렸으나 미국의 원조로 아랍군을 몰아내게 된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막대한 지원을 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은 후원한 까닭은 이러하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영향력이 필요했고,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전략적 자산이었다. 아랍국가의 막대한 부가 그들에게 그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비판거리가 있다. PLO의 화해시도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거부하고, 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다소 축소되고 있다. 노암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에서는 이를 자세히 설명한다.
현재 이스라엘은 UAE와 수교(아브라함 협정)하고 이집트와 화해협정을 하였다.
한편 위와 같은 사유로 일부 국가(이슬람)에서는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아래의 사진은
말레이시아 여권이다.
한국에서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전통적인 우방국이며, 독도와 동해를 정식 표기해주는 몇 안되는 국가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정착촌을 구성하고 야금야금 영토를 넓히는 것이 여지없는 비판의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